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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툰 잡담 ::

2년만에 일하기가 무지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동안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하느님께서 무언가 서러운 것이 있으셨는지, 이곳에서는 잘 구경하지 못했던 비가 억수로 왔다. 물론 비가 안오는건 아니었지만, 한국 장마철때 내리는것처럼 180mm의 비가 내리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없었던 일이다.

일요일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막내는 방에서 열심히 컴퓨터를 하고있는데 부모님이 증발하셨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었다. 알고봤더니 지하실에 부모님 두 분 다 계셨던 것.

일요일 오후 6시쯤 어머니께서 지하실에 물이 세는 것을 발견하시고 아버지와 함께 열심이 물을 퍼다 나르셨다. 배수구가 막혔다거나 펌프가 고장났던 것은 아니고, 워낙 땅에 물이 많이 차 있어 갈 곳이 없었던 탓에 이제 집의 지하실로까지 물이 세기 시작했었던 것이다.

갈 곳이 없이 정처없이 떠돌다가 우리집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어, 불현듯 비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빗물들아 이리오렴~ 형아가 돌보아줄께^0^'

라는, 내가 생각해도 무지 귀여운 생각을 하며 자그마한 자신들만의 안식처인 '지저분한 웅덩이'를 지하실 한 구석에 만들어가는 물을 열심히 쓰레받기로 걸레통에 퍼담아 싱크로 가져가서 부어줬다.

'이 물은 우리집의 오래됐지만 냄새나지 않는 배수구를 통하여 강물형과 만나서 바다삼촌한테 가겠지... 애들아, 무사히 가야해!'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은 방금 막 했다.

여하튼 그렇게 흘러들어오는 물으 퍼낼 때, 첫 두어시간정도는 노래도 흥얼흥얼 부르고 무한반복동작을 실시하였으나, 서너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다리도 땡기고 어깨도 아프고,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나는 출근한다는 핑계하에 4시쯤 잠이라도 자러갔지, 부모님은 날밤 꼴딱 날리시고 나서, 내가 퇴근했던 6시 무렵까지도 물만 퍼다 나르고 계셨다. 나는 잽싸게 세수를 하고 부모님과 바통터치, 물을 퍼다나르기 시작하셨고, 잠시 후에 부모님은 뻗으셨다.

아무리 퍼다 날라도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쏟아나오는, 새어들어오는 빗물을 보며 '예수님이 우리집에 찾아오셨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건 헛고생이었다.

'어차피 시멘트 바닥인데 그냥 냅뒀다가 비그치고 마르고 나면 닦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물어보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가구랑 짐 등이 있어서요'라고 대답해 드리고 싶다.

'가구를 옮기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을 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변명을 위해서 가구를, 짐을 옮기지 못했던 이유를 말씀드리겠다.

1) 짐들이 큰 상자들, 혹은 킹사이즈 침대 매트리스, 냉장고, 세탁기, 드라이어 같은거였다.
2) 이 녀석들은 지하실 문으로 못나간다. 나가려면 뒷뜰로 나가는 지하실 카바(?)문을 열고 나가야한다.
3) 밖엔 비가 억수로 오고있어서 밖으로 들고나갔어도 쫄딱 젖어서 물에 빠진 가구 꼴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일에 세 가지의 이유가 있으면 적당하다고 생각하기에 (뭐 난 솔직히 한 가지 이유만이라도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꼭 숫자 3을 강조하시는분들이 특히 아시안 중엔 많더라), 이유 나열은 여기까지.

이건 뒷이야기지만, 비가 멈추고 나니까 온 동네의 집들이 물을 빼느라 난리였고, 우리는 밤새 꼴딱 물을 퍼다 날라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고, 승자의 미소를 ^_^)v 하고 지어주었다. 심지어 펌프트럭까지 부른 집들도 있었다. 퇴근길에 펌프트럭 4대가 줄줄이 세워져있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나에게는 카메라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운전중 이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기나긴 서론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오늘은 일하기가 너무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일하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많은 일을 처리하긴 하였다. 일하기 시작한지 2년 하고도 5개월, 정규취직한지 1년 6개월 반만의 일이다.

내가 아무리 회사에서 싸이를 하고, 페이스북을 하고, 잠을 자고, 웹게임을 한다고 하지만, 나는 워커홀릭이다.

지인들은 내가 일하다가 건강해칠것이라는 둥, 걱정을 많이 해준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일벌레'에 속하며, 그 일벌레부대중에서도 내가 대장직이나 간부직을 맡게되면 행동부대원이 사라진다는 이유로 직책은 맡지 아니하고 항상 최전방에 서는 최정예 엘리트 멤버인 '워커홀릭'이다.

하지만 일요일과 월요일에 그런 헛고생을 해서인지, 아니면 지난 몇 주동안 밤샘작업하고 밤새 할 일을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자서인지, 이번주는 능률이 그렇게 좋지가 않고, 또 의욕이 없어서 빨리퇴근한 편에 속한다. 동시에 늘어나는 일거리들...ㅠ

오늘 일하기 싫은 결정적인 이유는, 요즘 계속 눈과 추위에 맞서 싸우는, 한국에 있는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게도 화창한 날씨 때문이다. 비가 내리고 나니까 날씨가 슬슬 풀리려나 보다. 어제도 날씨가 화창했지만, 오늘은 기온이 더 올라가서 무려 17도나 된다!!

일하다가도 목을 풀려고 고개를 돌리다가 창밖을 보는 순간, 내 시선은 창밖에 꽂혀서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에 다른 생각이 가득하다.

'나가서 풀밭에서 낮잠자고 싶다. 풀밭에 드러눕고싶다. 일하기 싫다. 놀고싶다.'

등등 가지가지 생각이 들지만... 어쩌겠어, 살아남기 위해선 일해야지ㅠ

남은 2시간, 열심히 집중하도록 노력하며 퇴근준비를 벌써부터 하고있다.